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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쾌락과 고통사이에서 힘들어하고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알아보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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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에는 저울이 있다.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과도한 업무, 학업 및 진로 고민, 경제력 부족, 자녀 문제 등 고통을 피하려 우리는 피난처를 찾습니다. 술, 담배,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야동, 자위행위 등 이런 유흥거리들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합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인간은 쾌락을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크기의 쾌락을 위해 점점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주 몇 잔으로도 기분 좋았는데 이제 그만큼 취하기 위해선 몇 병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이성의 나체 사진만 봐도 흥분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부터는 평범한 성관계 영상은 시시하다 느낍니다. 그러니 더 강한 자극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현타가 옵니다. 쾌락을 위해 시작한 일이 고통으로 끝이 납니다. 이 고통을 잊으려 우리는 다시 더 큰 쾌락을 찾아 나섭니다. 왜 우리는 고통을 줄이려 하는 일에서마저 고통을 느껴야만 할까요? 어떻게 해야 고통의 악순환을 끊고 도파민을 이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제시하는 책이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의대 정신과 교수 애나램키가 쓴 도파민 네이션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올바른 도파민 활용법은 평형입니다. 고통과 쾌락 사이 평형을 유지하는 게 성공을 위해 도파민을 활용하는 법입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울의 평형은 구속과 고통이다.
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시죠.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우리 뇌는 저울과 같습니다. 저울 양 끝에는 쾌락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울은 평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 쾌락이 쌓이면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통이 쌓입니다. 뇌가 저울과 같다는 말은 단순 비교가 아닙니다.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쾌락과 고통은 같은 뇌 부위에서 처리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역 상관관계가 존재합니다. 자위행위 한참 하고 나면 현타가 밀려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래도 그 정도 고통은 쾌락을 위해 감수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적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집니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집니다. 쾌락을 느끼는 만큼만 고통스럽다면 가끔은 쾌락을 위해 고통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쾌락 자체는 좋은 거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뇌 속 저울은 적당히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고통을 추가해 평형만 맞추면 되는데 점점 고통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집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선택한 쾌락이 더 큰 고통을 부릅니다. 이 고통을 잊기 위해 더 큰 쾌락을 추구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쾌락에 중독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저울의 평형을 되찾고 쾌락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해답은 구속과 고통 추구입니다.
첫째 구속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립니다. 평형을 되찾기 위해선 스스로를 구속해야 합니다. 이 말이 절대적 금욕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무언가에 중독되었다고 해서 꼭 중독 대상이 악은 아닙니다. 성중독이 안 좋다고 해서 성관계가 악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평범한 자극으로는 도무지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중독 상태입니다. 평범한 성관계를 통해서도 충분한 만족을 느끼도록 우리 뇌를 리셋해야 고통 없이 도파민이 주는 행복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리셋 버튼이 바로 구속입니다. 저울이 다시 평형을 이룰 때까지 스스로를 구속해 중독 대상을 끊어야 합니다. 충분한 기간 중독 대상을 끊으면 우리 뇌는 고통 쪽에 놓인 무게추를 덜어냅니다. 그러면 다시 작은 자극에도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자기 구속에는 세 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물리적, 순차적, 범주적 전략입니다.
첫 번째 물리적 전략입니다.
중독 대상을 갖다 버리는 겁니다. 책에는 자위 중독으로 자위 기계를 만든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이 자위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바로 자위기계를 부숴버리는 겁니다. 기계는 그대로 두면서 끊을 거야라고 백날 말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의지만 가지고는 자신을 구속할 수 없습니다. 중독 대상을 접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인 구속 전략입니다.
두 번째 순차적 전략입니다.
순차적 전략은 시간제한을 설정하는 겁니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하면 업무 시간 끝나고만 쓸 거야, 오후 3시 전에는 안 쓸 거야 등 시간제한을 거는 방식입니다.
세 번째 범주적 전략입니다.
범주적 전략은 중독 대상과 비슷한 범주에 속하거나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극까지 제거하는 것입니다. 스포츠 도박에 중독됐다면 스포츠 기사 읽기, 스포츠 중계 보기 등 관련된 자극을 한 번에 끊는 것입니다. 잠재적인 위험까지 제거해 중독에 다시 빠질 위험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입니다. 이런 자기 구속을 통해 우리는 저울을 평형 상태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쾌락 추구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다만 저울의 균형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쾌락 자극만 주어져도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고통은 없앨 수 있습니다.
둘째, 고통 추구입니다.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저울 균형이 깨져 고통이 생겨난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고통을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쾌락이 생겨납니다. 또한 쾌락에 중독될수록 약한 쾌락에는 둔감해졌듯이, 고통을 추구할수록 작은 고통에는 둔감해집니다. 즉 고통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쾌락을 얻고 어지간한 고통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단련되기까지 합니다. 운동이 좋은 이유가 이겁니다. 운동을 하려 하면 귀찮은 피로감이 우리를 덮칩니다. 그러나 일단 운동을 마치면 오히려 후련함, 개운함을 느낍니다. 또한 처음에는 조금만 운동해도 근육통이 오지만 운동을 반복할수록 근육이 더욱 단련되고 능숙해집니다. 운동 실력이 늘수록 더욱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당한 고통이 주어졌을 때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를 호르메시스라고 합니다. 호르메시스는 유익하게 도파민을 활용하는 비결입니다. 당장은 시험공부를 하거나 업무에 몰두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장기적으로 성취를 가져올 뿐 아니라 도파민 분비를 촉진합니다. 최선을 다해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얻는 쾌감이 그 어떤 기쁨보다 큰 이유입니다. 적정 수준의 고통은 도파민 저울에 평형을 맞추고 새로운 쾌락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고통을 선택하라.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고민할 때는 고통을 택하세요. 당신은 스마트폰으로 SNS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책을 볼 수도 있습니다. 독서가 스마트폰 시청보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독서를 택하세요. 침대에 뒹구는 것보다는 나가서 운동하는 게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나가세요. 쾌락과 고통의 저울 사이에서 고통을 택하면 쾌락과 성장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절제의 고통, 고통을 감수하는 고통을 통해 우리는 평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각자 이유로 고통받는 우리는 비참함을 피하려 열심히 노력합니다. 요즘은 고통을 덜어줄 쾌락을 찾기가 참 쉽습니다. 스마트폰 클릭 한 번에 좋아하는 영상이 나오고, 물건이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배송되는 등 말입니다. 그런데 비참함을 피하려 이런 쾌락거리들을 찾을수록 우리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쾌락에 내성이 생겨 더욱더 큰 쾌락을 추구하고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절제하고 고통을 추구하세요. 고통을 추구하는 게 고통을 벗어나고 도파민의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